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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거류지 하수도 정비
최종 갱신일 2024년 7월 25일
근대 하수도 발상지 요코하마
1859년(1859) 요코하마가 개항되면서 소어촌에 불과했던 요코하마의 양상은 급변했다.
부두의 건설, 거류지 정비를 비롯해 개항지로서의 마을 만들기가 시작되었다.요코하마에는 외국과의 창구로서의 성격으로부터, 당시의 최첨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이나 문물이 소개되었다.현재에도 그 모습을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요코하마에 도입된 것 중에는 공원, 신문, 경마 외에 철도, 전신, 수도, 가스 등 도시 기반을 담당하는 기술의 도입도 많이 볼 수 있다.이러한 기술은 당시 산업혁명을 이루고 있던 구미 선진국의 최신 기술이며, 요코하마가 근대 기술 도입의 땅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R.H. 브랜턴(개항 자료관 창고)
거류지의 외국인들은 산업의 발전과 함께 오염이 진행된 자국의 상황을 자세히 보고 있었고 도시 기반 정비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또한 당시 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콜레라가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류지의 배수와 하수도의 정비는 거류민의 갈망하는 곳이었다.당시 요코하마의 주요 도로에는 굴할이 포설되어 하수도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구조적으로도 조악한 것으로, 곳곳에서 즉, 넘쳐나버리는 상황에서 땅속에 묻은 관에 오수를 흘린다는 구미의 하수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유신에 의해 메이지 신정부가 탄생하고 나서 1864년(1864년) 11월에 각국 영사와 막부 사이에 체결된 「요코하마 거류지 각서」에 근거해, 거류지의 하수도 정비를 진행한 것은 메이지 정부 최초의 고용 외국인이 된 영국인 브랜턴(Richard Henry Brunton)이었다.
거류지의 하수도 정비 계획은 1869년(1869)에 착수되어 1871년에 완성되었다.이 하수도는 기와제도관에 의한 하수관을 매설하는 것이었다.
벽돌 난형관 부설
관내 외국인 거류지의 거류 외국인은 1871년(1871)에 1071명이었지만, 1880년(1880)에는 4배 미만의 3937명으로 급증해, 배수량이 하수관의 용량을 웃돌고, 각 호에서 나오는 오수에 혼입한 다양한 고형물에 의해 자주 하수관이 막혀 브랜턴에 의해 건설된 하수도에서는 더러움의 배제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거류 외국인으로부터 불만의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또한 1877년(1877년)부터 1879년(1879년)에 걸쳐 사망자가 11만명에 달하는 콜레라가 전국적으로 대유행한 적도 있어 하수도 개수 공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미타 젠타로
가나가와현은 1880년(1880)부터, 개수 공사의 조사·계획 입안에 착수해, 어용가케 미타 젠타로를 그 책임자로 했다.미타 젠타로는 1855년(1855) 시모노쿠니 모기에서 태어나 히타치 타니타베번의 공진생으로서 대학 남교(현 도쿄 대학)에 입학했다.도쿄 대학 이학부 토목공학과 제1기생인 미타는 1879년(1879년), 가나가와현 토목고가 되어 요코하마의 마을 만들기에 큰 업적을 남겼다.
미타의 설계는 1846년에 영국인 존 필립(John Philip)이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관의 세로와 가로의 비율이 3대 2의 난형관이었다.이것은 오물을 하수관에 침지시키지 않도록 유속을 확보하기 위해 경사를 1/200으로 하고, 또 통수가 적을 때에도 유속이 떨어지지 않도록 형상을 난형으로 한 것이었다.
난형관은 벽돌과 시멘트에 의해 만들어진 벽돌관이며, 구경이 다른 3종의 벽돌관을 각각 대하수, 중하수, 소하수로 간선 부분의 도관 대신, 건설되었다.
개수 공사는 1881년(1881)부터 1887년(1887)에 걸쳐 시공되어 벽돌 난형관 약 4km, 도관 12.6km가 포설되었다.이 하수도는 일본 최초의 근대 하수도이며, 미타 젠타로는 일본인 최초로 근대 하수도를 설계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벽돌 구조 난형 관 구조도 (단위:척)
오하수
나카하수
고하수
벽돌 난형관의 보존·활용을 향해
1996년 5월 요코하마세관(퀸즈타워) 앞에서 NTT 관로 공사 때 발견된 대하수(벽돌난형관)는 이 미타의 설계에 의해 건설된 4km의 벽돌난형관 중 일부이다.벽돌 난형관의 천설 상황은 1899년에 작성된 「칸나이 거류지 하수관 부설도」에 분명하지만, 그 중에서 대하수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벽돌 난형관은 도시의 발전과 함께 그 대부분이 개변되어 버린 것으로 생각되지만, 앞으로도 발견될 가능성은 있어, 현재까지의 보존·활용의 방법을 확인함과 동시에, 대하수(벽돌 난형관)의 보다 좋은 보존 활용 방법을 찾아야 한다.
- 참고 자료
- “요코하마 하수도사” 발행:요코하마시 시모 수도국
- 「일본 하수도사-총집편-」발행:소니 일본 하수도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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